에미야 시로X코토나미 시즈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_내일 또 보자
“으…. 역시 좀 추운데! 날이 아직도 안 풀렸나?”
“그러게. 긴 소매로는 조금 부족할지도. 아저씨, 나중에 코트랑 목도리 꺼내줄 테니까 지금은 조금만 참아줘.”
“아, 그래주면 고맙지. 그래도 코트만으로는 안 돼. 역시 코타츠도 켜자, 꼬맹아. 응?”
“안 돼. 그걸 켜면 또 거기에만 누워있을 거잖아?”
“쳇. 들켰네.”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입김은 얼어붙어서 새하얗게 허공에서 퍼지고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는 추운 날씨였다.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반인반수에게든 날씨는 언제나 공평하기 때문에, 시로와 시즈의 전신은 차디찬 바람에 굴하지 않고 열을 보존하느라 애를 먹어야했다.
걸음에 맞춰 바스락거리며 내용물을 감싸는 봉투 소리를 바탕으로 자동차 소리와 시끄러운 광고 소리와 강아지가 짖는 소리, 그리고 어린 아이가 웃는 맑은 소리가 이따금씩 스쳐지나갔다. 이런 일상의 조각조차도 비일상에 발을 들여놓았었던 인물들에게는 평화롭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그렇기에 더욱,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을 지켜보는 시선의 깊이가 한층 달라지는 것도 당연했다. 바람이 한 번 더 세차게 불었을 때 불현듯 길을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이 내밀어졌다. 그건 시즈의 손이었다.
“손잡고 가자.”
“뭐? …아냐. 괜찮아.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 잡으면 아저씨 손이 차가워질 거고.”
“그게 뭐 어때서? 자, 얼른. 내가 보기엔 어린애 맞으니까 이 정도 응석은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좀 부려라.”
시즈는 시로의 애매한 주저함에도 개의치 않고 그의 손을 거의 낚아채듯 했다. 꽁꽁 얼어버린 그의 손은 적어도 시즈의 생각보다는 차가웠다. 하루 종일 목도리 이외의 별도의 방한 도구는 없는 채로 외출하고 있었던 만큼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굳이 목소리를 내어 주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손이 대신 말하고 있었다.
얼른 따뜻해졌으면 좋겠는데…….
오렌지에서 세피아로 점점 바뀌어가는 맑은 하늘에는 구름이 드문드문 깔리고 노을에 길어지던 그림자는 땅거미에 조금씩 먹혔다. 그런 늦은 시간에도 에미야 저택의 현관은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환영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마술사의 공방 치고는 출입이 용이한 점도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현관이 반갑기만 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꼬맹아.”
같이 외출했더라도 일부러 인사를 나누는 건 일종의 절차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시즈가 부엌에 내려놓고 봉투의 내용물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동안 시로는 드물게도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뭐라도 묻었냐?”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 무슨.”
짐승 특유의 그것으로 돌변했던 눈빛이 다시 순하게 돌아오는 건 한 순간이었다. 시즈는 더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양 이제는 허물처럼 남은 빈 봉투를 구겨서 보관하며 손을 털 뿐이었다. 일부러 캐려고 해봤자 입을 쉽게 열지 않을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이가 싫어할 만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의사 표현이기도 했다.
적절한 난방과 사람의 온기로 공기가 점점 더 따스해진다. 바깥의 추위에 시달렸었던 육체는 고단함과 수면욕을 내세우며 늘어지고 싶어 했다. 본능에 충실하던 이가 나른한 유혹에 저항하려면 꽤나 힘이 들었다.
“아저씨, 혹시 졸려?”
“…조금…?”
“그럼 조금만 기다려. 수프라도 먹고 자.”
“수프? 야채가 들어가는 거라면 싫어.”
“편식은 안 된다고 했잖아.”
정말이지 누가 아이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우스워져서, 겉옷을 벗고 엎드려있던 시즈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와서 앞치마를 매던 시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를 죽이고 웃었다.
아무래도 요리인으로서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도, 시로는 안 그래도 패스트푸드를 고집하고 야채를 사양하는 시즈 자신에게 흔히 시판되는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따위를 먹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시로가 자신 있게 내놓은 수제 수프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짐승에게는 과한 따뜻함이었다. 적어도, 시로가 수저와 그릇을 치우는 동안 더욱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지던 걸 보면.
손의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풀던 시로가 작은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보였다. 한 자리에서 잠들면 옮기기 힘들어진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하게 늘어진 모습은 보기에 나쁘지 않은 광경이었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된다니까. 감기 걸려.”
“아냐, 안 걸려…. 괜찮아…….”
무겁게 닫혀있던 눈꺼풀이 열린 순간 불시에 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시로 자신의 눈동자보다 조금 밝은 정도의 색에 불과함에도 어째서 매번 그 눈빛을 피할 수가 없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꼬맹아. 나, 내일 햄버그 먹고 싶어.”
“음…. 알았어.”
“정말? 무르기 없기다?”
“응. 무르기 없기. 마침 재료도 충분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좋아. 그럼 됐어.”
“후지 누나 몫까지 만들 수 있으려나….”
마지못해 일어난다는 기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표정이기는 했어도 결국 시로에게 거의 업히듯 뒤에서 기대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해가 뜨면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을 평온한 일상에 변함없이 서로의 존재가 녹아있을 게 분명하다. 잘 자. 내일 또 봐. 좋은 아침. 잘 잤어? 아무 것도 아닌, 하지만 특별한, 당연한 인사가 반복되는 건 바라던 바였다.
“오늘은 손잡고 같이 자도 되냐?”
졸음으로 한껏 무겁게 늘어진 투정은, 정확히 사람의 체온만한 온도였다. 어깨에 얹힌 무게가 떨어지고 이윽고 같은 잠자리에 눕게 된 순간에는 시로도 시즈도 진심과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삭이곤 했다.
잘 자. 내일 또 봐. 그리고,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