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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 료타X마츠오 이로하

쿠로코의 농구_Sweet Devil

 

 

"그거 대체 무슨 차림임까?"

 

키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깔끔한 검정 테일러드 재킷과 와인색의 미니스커트, 걸을 때마다 아스팔트를 뚫을 것 같은 높은 힐을 신은 로하가 웃으며 서 있었다. 그녀가 구두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살짝 들어 자신과 눈을마주치자 로하에게서 어렴풋이 향수향이 느껴졌다.

 

"료타 오늘은 좀 봐줄 만해?"

 

평소에는 이게 데이트인지 집 앞에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가는 것인지 분간이 안가는 차림으로 자기를 만나던 사람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자신의 앞에서 있는 것이 키세로써는 엄청나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조금 고민을 하다가 일단 지금은 촬영을 하는중이다 라고 자기암시를 걸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눈앞의 로하를 쳐다보았고, 그러자 그녀 역시 살포시 웃으면서 계속 시선을 맞췄다.

 

"네,뭐 조금 봐 줄 만하네요"
"그렇지? 오늘 아침에 미용실도 다녀왔는걸 료타가 예쁘다고 하니까 괜스레 설레는데?"

 

로하가 머리를 매만지며 평소에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활짝 웃는 미소로 화답한다. 그걸 본 키세는 급기야 온몸에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오늘 로하치가 많이 아픈가?' 따위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다가 팟 하고 난장판이 된 기억 속에서 며칠 전 로하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발단은 이러했다.

 


"야 쟤 요즘 자주 보이지 않냐? 진짜 이쁘다"

 

한가한 주말 오후, 키세랑 로하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게 고작 이런거라는 것도 맘에 안 드는데 거기다가 따분하기만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고 이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그저 재밌다고 웃어 재끼는 로하의 태도마저 더해져 짜증이 난 키세가 조금 감정을 실어서 대답했다.

 

"그러게요, 아 ,로하치는 쟤보다 돈이 더 많은데 왜 안예뻐여?... 아 혹시 안 예뻐서 돈이라도 준건가?"
"그럼, 너는 가난하니까 열심히 돈 벌라고 그런 얼굴인가 보네"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한다. 정말 얄미워, 하지만 밀려오는 짜증을 누르고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다.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이 얼굴이면 로하치 보다 돈 많이 벌고도 남지않을까여?"
"..........응, 잘생겼으니까"

 

키세의 미간이 심각하게 구겨진다. 뭔가 나의 잘생김을 인정했는데 로하가 이긴 느낌, 그렇게 한참을 기분 나빠하던 키세는 인상을 또 한 번 누그러뜨리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로하치, 근데 로하치는 왜 안꾸며여? 돈 들여서 꾸미면 드라마 주인공들도 예뻐지던데, 물론 배우 본판이 예뻐서 가능한 거지 만여"

 

아까부터 애써 무시하면서 여유로운 척 화면을 보던 로하의 표정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키세를 쳐다보며.

 

"이게 아까부터 시비네 모델생활 끝나고 수험생활 빡빡하게 하고 싶냐"
"무슨 소리에여그리고 저 성적 오케이 인데여?"
"웃기시네 성적 오케이? 뭐 보충받을 만큼 정도의 성적인 것에 대한 오케이냐?"

 

드디어 이쪽을 보네, 기쁨도 잠시 한 마디 한 마디 빈정거리는 로하를 보며 또 다시 기분이 나빠진 키세가 지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다짐으로 말을 이어간다.

 

"제가 머리를 안 써서 그렇거든요? 로하치야말로 수학성적 저번에 18점 나온 거 다 아는데여"
"넌 모든 과목이 망했는데 어디서 한 과목 갖고만 비교를 해? 양심에 털 난 놈아"
"로하치 털이나 어떻게 하시져 저번에 보니까 세면대에 어휴..수술해야되는거 아닙니까? 아니면 집에 내가 모르는 포유류라도 키움까?"
"야 거기서 털 얘기가 왜 나와, 임플란트 하고 싶냐?"
"어? 한 대 칠 기세네여? 그럼 쳐봐요 보상금이나 왕창 뜯어먹게"
"그래? 얼굴 똑바로 대라 오늘 강냉이 털어서 팝콘파티 할 거니까"

 


이런식으로 온종일 투닥거렸다 .
그래, 분명히 평범하게 보냈는데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지...털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키세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로하는 웃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말한다.

 

"나도 모처럼 이렇게 꾸몄는데 그냥 놀다 들어가기엔 따분하잖아? 그러니까 우리 오늘 떨어져서 애인이 없는 척 다니면서 2시간 동안 누가 더 번호 많이 교환하는지 내기하자, 어때 료타?"
"흠 그래여? 그거 재밌겠네여"
"그렇지? 재밌겠지?? 아 근데 설마 너 꼼수 쓰는 거 아니지? 번호를 주고받았다는 문자가 없다면 취소야"
"설마 제가 그런걸 쓰겠나여?"
"그건 봐야알지" 

 

드디어 로하치의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구나, 키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가 아무리 때 빼고 광낸들 내가 누군가? 이 바닥에선 잘나가는 유명한 모델 키세료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기에서 이긴듯한 기분이 들면서 아까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였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가 되었다.

 

"아 근데 이기면 뭘 들어주는 거에여?"
"흠....뭘 들어줘야 하나?"

 

고민하는 로하를 앞에 두고 키세는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머리에 떠오른 듯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거 어때요? 이긴 사람은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사람이랑 오늘 하루 바람피우기"

 

최고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랑 바람피우는 걸 보는 로하라니 분명히 속이 뒤집어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겠지 내기를 하자고 한 건 본인이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 나가자 몸에 짜릿한 전율마저 일어나는듯한 느낌이 드는 키세였다.

 

"뭐? 아 잠깐잠깐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팔짱을 풀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키세와 시선을 맞추며 로하는 바로 전의 제안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호라, 그래 이런 반응이 나와주시면 나야 고맙지. 키세는 미소를 띄고 눈을 반쯤 뜨며 로하를 쳐다보며 묻는다.

 

"왜여, 자신이 없어여? 그럼 지금이라도 그냥 없던 걸로 할까요?"
"아니, 너야말로 나중에 없던 걸로 하자고 억지나 부리지 말지 그래"

 

평온한척하지만 단단히 약이 오른 표정이다. 완전히 휘둘리고있네, 속단은 금물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펼쳐질 일을 모르고 있는 로하를 구경하는 내가 행복하니까, 나중에 봐. 그 말을 기점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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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지났을까, 내기를 끝내고 둘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앉아있었다. 마치 축배를 드는 것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로하와는달리 키세 쪽은 속이 커피콩처럼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

 

"판은 물리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지 료타?"
"....."
"괜찮다는 걸로 알아들을께"
"...."
"정말이지 네가 멍청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커피잔 안을 들여다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그렇다, 결과는 로하의 압도적인 우승. 그도 그럴 것이 이 바닥에서 유명한키세가 많은 일반인하고 번호교환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고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길 수도 없는 내기였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버스는 떠나갔었고 승자는 누구인
지 정해진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건 그런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자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누구인지는 안 물어볼게요"
"음... 안 물어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커피 다 마셨으면 난 먼저 일어날게"
"아... 좋은 시간 보내세여"

 

대답도없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나버리는 로하를 보며 키세는 세삼스래 또 한 번 자신의 멍청함에 감탄한다. 이제 하게 되는 건 연락이 오지 않을 휴대전화기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내일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화가 치밀면서 오늘만큼만 자존심을 내리고 따라가 볼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때쯤이였다.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야 빨리 나와 다리 아프니까"

 

악마같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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